사랑합니다. 편안히 잠드소서

시대에 역행하다!

모처럼 쉬는 금대패 씨,
아침부터 신용카드대금이 많이 나왔네, 돈 좀 아껴서 썼으면 좋겠네 잔소리가 심하다.
내가 옷 사서 입는 취미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얼굴에 주름 하나하나 신경쓰는 사람도 아니고, 밖에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나 걱정하는 사람도 아닌데다가 교육열이 높아 아이에게 이것저것 사주고 돈으로 만족하는 엄마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나 자신을 위해서 쓰는 돈이라고 해봐야 가끔 사서 보는 책값, 동네 언니들과 먹는 칼국수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마누라가 좀 지루하셨나?
몇 달 전에 친정아버지 사드린 운동화 두 켤레값 가지고까지 시비다.
"그 바로 밑에 보이지? 어머니 약 지어드린 거. 이번 달에 처음 할부 나간다."
나는 뭐 할 말이 없나?
지난 달, 집안에 행사가 얼마나 많았던가?
시어머니 올라오셔, 이원이 돌잔치에 설명절을 시댁과 친정 둘을 챙긴데다 가족사진까지 찍었다.
이원이 돌사진하며 목돈이 들어간 곳이 한두곳이더냐.
꾸역꾸역 치미는 울화를 속으로 꿀꺽 삼키고 조용히 이원이를 업고 길로 나섰다.
그래, 전화부터 끊자.
집에 있으면서 자기보다 요금이 더 나온다고 뭐라 그랬지?
누가 더 답답한가 보자.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그냥 바로 대리점에 가서 휴대폰을 해지하고 왔다.
내일은 집전화도 눈에 보이지 않게 치워버릴 예정이다.
그렇게 동네를 한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오니 이원이는 등에서 잠이 들었다.
난 겨울의 추위를 꿋꿋이 이겨낸 우리집 화초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누런 잎사귀를 다 잡아뜯고, 사랑초는 멀쩡한 제화분에서 끌어내 큰 화분으로 옮겼다.
"니들이 질긴거야. 나같은 게을러터진 주인한테 걸려서도 겨울 내내 얼어죽지도 않고 살아남았잖아."
새로 사왔던 아이비는 얼어죽었는 줄 알았더니 용케 새 잎을 내밀고 버리지 말아달라 애교를 떤다.
몇 해를 잘 키웠던 화분이 얼어죽어서 이젠 화초를 키우지 말자고 생각했더니 이녀석, 아이비가 나를 다시 이끈다.
우리 앞으로 잘 해보자.
휴대폰도 없고, 전자레인지도 없는 이런 시대에 역행하는 아줌마랑 잘 살아보세.

by 머큐리 | 2008/02/28 13:49 | 트랙백 | 덧글(3)

Commented by 천의무봉 at 2008/02/28 13:59
........ 뭐, 절약하는게 좋긴하지만.....
그래도 소소한 즐거움을 위해서 약간의 돈 쓰는건..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서로서로 잘 이야기하셔서 하나하나 맞춰나가셔야죠^^
Commented by 코피루왁 at 2008/02/28 15:26
엥?? 그럼 전화 안되는 거야??
Commented by 머큐리 at 2008/02/28 21:48
천의무봉님/ 그냥 '미안해' 한 마디에 풀어질 신경전이었을 뿐입니다. 다 늦은 저녁에 마트에 가서 건빵바지랑 트레이닝바지 하나씩 사줬더니 헤벌쭉 기분이 풀어졌네요. 단순한 남편덕분에 가끔 이렇게 속을 콩 볶듯 볶는거죠. 다들 그렇게 사는 게 결혼생활이고 인생이래요. ^^ 그나저나 천의무봉님은 직장생활 잘 하고 계시죠? 봄엔 데이트도 하시고 벗나무 꽃그늘에서 키스도 하시고 그래야죠.

루왁/ 전화 해봤으면 알거 아녀? 휴대폰은 그냥 없애버렸으니 이젠 집전화로 전화하니라. 매달 자기보다 전화요금 많이 나온다고 들볶여서 그런지 오히려 속이 후련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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