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25일
절망이 아닌 선택
때때로 우리는 삶을 살아감에 있어 피치못할 선택을 해야하는 기로에 놓일 때가 있다.
무엇보다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해야만 하는 그런 진퇴양난에 놓일 땐
선택 보다는 절망감을 느낄 것이다.
우린 그 동안, 수많은 정치인들에게 투표를 하고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과연 내 선택이 옳았던 것인가
스스로 자문해 본 적이 있었나.
부끄럽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 욕을 하고 불평을 쏟아낼 지언정
내 선택이 그런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책임지려하는 자세를 가지지 못했다.
그런 내가 노무현을 죽였다.
촛불의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그를 지키지 못했고
뉴스를 보며 욕을 하면서도 차라리 절망하고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그런 내가 노무현을 죽였다.
비보를 접한 그날부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나는 그런 죄책감으로 심장을 쥐어뜯고 있다.
현 정권과 보수언론, 권력의 개로 전락한 검찰이 그를 죽인 것이 아니다.
내가....
입바른 소리나 하면서 손가락질을 한 내가 바로 살인자다.
이 아둔하고 몰상식하며 천박한 내가, 대한민국이
올곧음에 있어 타협을 모르고 평생을 누더기로 진흙탕을 뒹굴며 용감히 싸웠던
용감하고 정의롭고 사랑스러운 그를 절벽에서 떠밀었다.
모두 용서하고 모두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가시는 그분의 영정을 보면서도
놓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아직도 비난하는 손가락을 거두지 못하는
이 얄팍한 내가.... 그랬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저는 천박하고 아둔했습니다.
그걸 깨닫는 방법치고는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눈물을 닦고 일어서는 날,
저는 다시는 그런 과오를 또다시 범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이것만은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죽어가는 대한민국에 밝은 씨앗을 던지고 가신 님께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무엇보다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해야만 하는 그런 진퇴양난에 놓일 땐
선택 보다는 절망감을 느낄 것이다.
우린 그 동안, 수많은 정치인들에게 투표를 하고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과연 내 선택이 옳았던 것인가
스스로 자문해 본 적이 있었나.
부끄럽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 욕을 하고 불평을 쏟아낼 지언정
내 선택이 그런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책임지려하는 자세를 가지지 못했다.
그런 내가 노무현을 죽였다.
촛불의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그를 지키지 못했고
뉴스를 보며 욕을 하면서도 차라리 절망하고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그런 내가 노무현을 죽였다.
비보를 접한 그날부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나는 그런 죄책감으로 심장을 쥐어뜯고 있다.
현 정권과 보수언론, 권력의 개로 전락한 검찰이 그를 죽인 것이 아니다.
내가....
입바른 소리나 하면서 손가락질을 한 내가 바로 살인자다.
이 아둔하고 몰상식하며 천박한 내가, 대한민국이
올곧음에 있어 타협을 모르고 평생을 누더기로 진흙탕을 뒹굴며 용감히 싸웠던
용감하고 정의롭고 사랑스러운 그를 절벽에서 떠밀었다.
모두 용서하고 모두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가시는 그분의 영정을 보면서도
놓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아직도 비난하는 손가락을 거두지 못하는
이 얄팍한 내가.... 그랬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저는 천박하고 아둔했습니다.
그걸 깨닫는 방법치고는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눈물을 닦고 일어서는 날,
저는 다시는 그런 과오를 또다시 범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이것만은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죽어가는 대한민국에 밝은 씨앗을 던지고 가신 님께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 by | 2009/05/25 11:11 | 낙서장 | 트랙백 | 덧글(1)




복잡 다양한 마음으로 보다, 이원이의 예쁜 모습에 흐뭇하오.
부모를 절반 씩 잘라 낸 얼굴이 모두 장점들만 모아 놓은 듯 혀.
이원이 예뿌다...